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따라, 발전사업자와 전력 소비자가 직접 전력을 거래하는 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전력구매계약)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는 PPA와 기존 계통 접속 방식 간에 충돌 지점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본 글에서는 직접거래 방식의 현주소, 시장제도와의 연계 문제, 그리고 실질적인 계통 접속 전략을 중심으로 PPA의 성공 조건을 정리합니다.
PPA의 개념 지역전력 분산에너지 활성화 정책
PPA(Power Purchase Agreement)는 발전사업자와 전력 소비자가 중간 유통 없이 직접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입니다. 재생에너지가 확산되면서 기존 한전 단일구매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했습니다. 2021년부터 한국에서도 기업 PPA 제도가 본격 시행되었으며, 특히 RE100을 선언한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SK하이닉스는 충북 지역 태양광 발전사업자와 20년 장기 고정가격 계약을 체결해 연간 약 400 GWh의 전력을 직접 구매하고 있습니다. 이는 RE100 이행뿐 아니라 전기요금 예측 가능성 확보, ESG 경영 강화 효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PPA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현실적인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발전단지의 위치와 수요지 간 거리. 거리 차이가 클수록 계통 손실 및 송전비용이 증가합니다. 둘째, 계약 기간 중 전력 도매단가의 변동성. 장기 고정계약은 안정성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시장가격이 급락할 경우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PPA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현재는 ‘직접 PPA’, ‘제삼자 중개형 PPA’, ‘녹색 프리미엄 연계형 PPA’ 등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습니다. 발전사업자 입장에서는 수익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ESG 이행 수단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향후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계통 연계’입니다. 계약 자체는 문제없지만, 실제 발전된 전기를 소비자에게 보내기 위한 계통접속 과정에서 허들이 발생합니다. 이는 제도적인 논의가 더 필요한 지점입니다.
PPA와 전력시장 RE100 정책
PPA는 전력의 ‘직접거래’를 가능하게 만들지만, 한국 전력시장은 한전 중심의 중앙집중형 구조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도적 충돌이 발생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한전망 사용료와 송전계통접속 절차입니다. 기본적으로 PPA는 전력을 실시간으로 직접 전달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발전된 전기는 한전 송배전망을 통해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합니다. 이때 문제는, 발전자는 송전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수요자는 한전에 기본요금을 내야 하는 이중 과금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현재까지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보완책은 제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또한, 계통접속의 지연이 사업성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PPA 계약이 체결되더라도, 해당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이 ‘계통제약 지역’ 일 경우 한전으로부터 접속 승인을 받는 데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2023년 전남 지역에서는 50MW급 풍력 PPA 계약이 체결되었음에도, 송전용량 부족으로 2년째 대기 상태에 머무른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PPA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투자자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합니다. 결국 PPA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 계약 제도 개편을 넘어서, 계통접속 기준의 개선과 송전망 사용료 구조의 개편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특히 시장제도 측면에서는 ‘실시간 거래’, ‘예측 기반 수요관리’, ‘지역 단위 전력거래 허용’ 등의 유연화 정책이 필요합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 캘리포니아의 PPA 모델은 지역 VPP와 연계되어 있어, 소규모 분산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실시간 거래가 가능한 구조입니다. 이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정책 법제도
현재와 같은 중앙집중형 계통구조에서 PPA를 실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첫째, 발전단지 인허가 단계부터 계통 연계 가능성을 판단하는 ‘사전 계통접속 진단제도’의 도입이 시급합니다. 이는 기존의 ‘계약 후 접속 검토’ 방식보다 예측 가능성을 높여 불필요한 투자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둘째, 지역 단위 전력거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유연화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군 단위나 산업단지 단위의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을 통해, 생산된 전력을 해당 지역 내에서 직접 소비하는 구조가 정착된다면, 한전 송전망에 의존하지 않는 계통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역 PPA’나 ‘집합 PPA’와 같은 새로운 계약 유형이 법제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PPA에 특화된 송전요금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는 기존 전력거래시장 요금체계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요금이 부과되고 있으나, PPA는 공급·소비가 명확히 지정되어 있는 거래이기 때문에, 전용 요금체계를 마련하면 참여 유인이 확대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계약 용량 기반 고정 요금제’, ‘시간대별 유연 요금제’ 등 다양한 모델이 가능합니다. 결국, PPA와 계통 연계의 성공적인 융합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의 문제입니다. 한국형 PPA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발전사업자와 소비자 간의 자율 계약 구조는 유지하되, 공공 인프라(계통)를 효율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합리적인 중간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면, PPA는 단순한 ‘녹색 마케팅 수단’을 넘어, 재생에너지 확대와 계통 운영 효율화의 핵심 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