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을 앞두고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서 비상전력 확보체계 개편이 절실해졌습니다. 예비력 중심의 전통적 운영모델은 빠르게 변화하는 출력, 실시간 수요 피크, 그리고 분산된 자원의 복잡성 앞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현재의 예비력 체계를 점검하고, 분산전원을 활용한 새로운 대응 모델, 그리고 복원속도 중심의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예비력 운영체계의 구조와 실질적 한계
현재의 전력계통에서 예비력은 전력 수요 급증이나 설비 이상에 대비해 투입되는 안전장치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스터빈, 석탄발전, 양수발전 등 가동 시간이 긴 설비들이 중심이 되며, 전력거래소가 예측 기반으로 계획한 예비량을 사전에 확보하고 운영합니다. 그러나 2024년 이후 재생에너지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 체계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응답 속도’입니다. 현재 예비력은 수 분~수십 분의 대응 시간을 필요로 하며, 이는 출력이 급변하는 풍력·태양광 계통에는 맞지 않는 구조입니다. 특히 예비력이 제 역할을 하려면 수요 증가 이전에 가동을 시작해야 하는데,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나 수요 급등 시 이 시간 차가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2023년 12월 한파 시 실제 예비력 투입 시점이 늦어 계통 주파수가 기준치 아래로 떨어졌고, 이는 산업계 일부에서 설비 정지로 이어졌습니다. 또 하나는 비용과 효율성 문제입니다. 예비력을 유지하려면 발전기를 대기 상태로 운영해야 하고, 이는 고정비와 연료비를 수반합니다. 이러한 비용은 시장가격에 반영되어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지며, 예비력 확보 자체가 ‘경제적 비효율’을 내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재생에너지의 불확실성을 모두 예비력으로 대응하려는 구조는 지속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이제는 기존 중앙집중식 예비력 모델에서 탈피하여 실시간 대응성과 분산성을 동시에 갖춘 대안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자원의 전환이 아닌, 예비력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분산전원을 통한 비상전력 확보 전략
분산전원(DER: Distributed Energy Resources)은 기존의 예비력 체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V2G) 등의 자원들은 지역 단위에 설치되어 있으며, 필요 시 빠르게 전력을 공급하거나 부하를 조정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집니다. 이러한 자원은 물리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분포해 있기 때문에, 전송 손실이 적고 사고 시 국지적 대응이 가능합니다. 특히 ESS는 예비력 자원으로서의 효용성이 매우 큽니다. 이미 충전된 전기를 수초 내에 계통으로 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주파수 보정이나 순간 부하 증가에 즉시 대응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는 태양광+ESS+DR을 통합 운영하는 실증사업을 통해, 기존 예비력보다 더 높은 응답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남의 한 마이크로그리드 사업에서는 10분 이내 출력제어 및 전력공급 복구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분산전원이 실질적인 예비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첫째, 자원 통합 및 제어 인프라 확보입니다. 다수의 소형 설비가 하나의 논리적 자원처럼 작동하려면, VPP(가상발전소)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둘째, 법적 지위와 보상체계 확립입니다. 현재는 예비력 시장이 주로 대형 설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규모 분산자원은 정산이나 참여 기준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산전원을 예비력 자원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정부는 ‘지역 유연성 자원 시장’을 준비 중이며, 2026년부터는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 운영될 예정입니다. 이 시장이 자리 잡으면, 분산자원도 예비력 제공 대가로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전력시장 참여가 실질적으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복원속도 중심의 계통운영 체계로의 전환
전력계통 안정성에서 복원속도(Rate of Recovery, RoR)는 점점 더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사고 발생 후 정상 주파수·전압으로 복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며, 단지 몇 분의 차이가 전체 산업계의 피해 수준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전력망은 공급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사고 시 전체 계통 차단 후 재시동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는 복원속도를 지나치게 저하시킵니다. 복원속도를 향상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지역 단위 복원 시나리오 수립입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전체 계통이 아닌 지역별로 부분 복구가 가능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전력공급 우선순위 및 자동 복구 알고리즘이 필수입니다. 둘째, ESS를 ‘복원전용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일부 ESS는 단기 비상전력 공급용으로 설정하여, 복원 중에도 기본적인 설비 가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는 DR(수요자원) 기반 부하 억제입니다. 사고 시 수요를 일시적으로 억제하면 복원 부담이 줄어들며, 실제로 2023년 여름 피크 시 한전은 산업용 고객 2만 곳에 DR 참여 요청을 보내 단기적으로 500MW 부하를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복원속도 향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결국 비상전력 체계는 ‘대기용 예비력 확보’에서 ‘실시간 대응 + 빠른 복원’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분산전원과 ESS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얼마나 많은 전력을 확보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계통을 정상화할 수 있는가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